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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요코하마 - 4. 4일차 - 요코스카 미술관

4일차

하늘이 우중충합니다.

 

어제 술을 꽤 마셨는데도 다행히 아침 기운은 좋습니다.

 

눈에 확 띄는 자판기.

 

갑자기 息子はサギ!?("자식은 사기!?")라고 적힌 자판기가 있습니다. 새로운 드라마 제목인가 하고 봤는데, 의외로 공익광고입니다. 공익사단법인 카나가와현 방범협회연합회의 작품입니다. 앞뒤 문장은 이렇습니다.

電話でお金を要求する 息子はサギ!?
전화로 돈을 요구하는 자식은 사기(詐欺)!?
息子などに電話で確認しよう!!
자식들에게 전화로 확인하자!!
家族だけの合言葉(ペットの名前、孫の名前など)を事前に決めておこう!!
가족끼리의 암호(반려동물 이름, 손자의 이름 등)을 사전에 정해 두자!!

 

렌트는 오늘 오후까지입니다. 오늘 오후와 내일 오전에는 도보와 열차로 여행하고, 내일 오후에 귀국합니다.

내 차.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내 것이었던 이 차가, 밤새 어디 굴러가지도 않고 주차장에 가만히 서 있으니 괜히 뭉클합니다.

오늘 오후 3시에 반납해야 하니, 정든 내 차도 오늘로 마지막입니다.

 

일본 첫 차와의 시간도 이제 끝나갑니다.

 

처음엔 도쿄만을 가로지르는 아쿠아라인(アクアライン)이라는 고속도로를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에 우미호타루(海ほたる)라는 휴게소와 전망대가 있어, 남쪽 하늘 높이 걸린 창창한 해를 바라보며 기운을 차린 후, 치바까지 넘어가 도쿄만 관음상(東京湾観音) 같은 곳을 둘러 보거나 그대로 되돌아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2일차에 가려고 했던 요코스카 미술관이 마음에 걸립니다. 둘 다 마음에 들어요. 요코스카 미술관이 조금 멀어서, 차 반납 시간을 생각하면 약간 아슬아슬한 것 같기도 합니다.

고민하다가, 미술관을 선택합니다.

 

요코스카 미술관 (横須賀美術館)

 

미우라 반도의 동쪽 끝입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미술관이라는 말에 주저 없이 꼽았던 목적지였습니다.

목적지 근처는 왕복 2차선의 한적한 길입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자 설렙니다.

 

감동적인 풍경.

 

주차장도 지하라서 풍경이 탁 트입니다.

 

아름다움에 취해 바깥만 빙빙 돕니다. 이 풍경을 놔두고 어딜 들어가란 말인가요.

 

미술관을 둘러 산책로가 있습니다.

 

미술관 뒤에서 바다 쪽을 바라봅니다.

 

이렇게까지 행복해도 되는 걸까?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바다의 공원에서 '지금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남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고 했지요.

이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옥상.

 

미술관 뒷편은 칸논자키(観音崎) 공원이라는 커다란 삼림공원입니다.

 

여기서 반나절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차 반납 일정이 밉습니다.

 

옥상에서 계단을 타고 바로 내려올 수 있습니다.

 

이 정도 위치 너머, 전시관에 가까운 곳에서는 사진 촬영 불가였습니다. 전시관도 아름답습니다. 높은 천장에 동그란 창이 여기저기 나 있고요. 층이 높다 보니 작품을 살피는 역할을 맡은 개미가 된 기분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소장품 갤러리.

 

카츠마타 토요코(勝又豊子)라는 작가의 전시 《부재의 너머-흰 여백(不在の向こうー白い余白)》가 진행중이었습니다. 신체를 테마로 한 작품들이었습니다.

별관인 타니우치 로쿠로 관(谷内六郎館)은, 놀랍게도, 타니우치 로쿠로(谷内六郎; 1921-1981)의 작품을 전시하는 곳입니다. 타니우치 씨는 일본의 주요 주간지인 주간신조(週刊新潮, 슈칸 신초)라는 잡지의 표지 그림을 담당했는데요. 1956년에 창간됐을 때부터 담당해, 화가 본인이 세상을 뜰 때까지 25년간 1,300여 편의 그림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림책 같은 이 표지들은 참 따스하고, 그립고, 어린이들을 아끼는 마음이 묻어납니다. 표지 그림마다 짧은 후기가 붙어 있어, 당시에 무슨 생각으로 그리셨는지 알 수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이런 전시도 있었습니다.

 

사실 다른 특별전도 있었는데요, 바로 《이웃 나라의 그림책: 약동하는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세계》전이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그림책 작가 9명의 작품 200여 점을 전시했다고 하네요. 김동성, 김재홍, 박철민, 서현, 이기훈, 이명애, 이수지, 이영경, 한병호. 재밌었을 것 같아서, 결국 시간이 다시 아쉽네요.

 

바닷가로 걸어나왔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나와 바다를 구경합니다.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완벽한 시간이었습니다.

 

요코스카 미술관 간판.

 

여기를 언급할 때 자꾸 탁음을 붙여 '요코즈카'라고 읽게 되네요. 塚(つか, 츠카)라는 단어가 다른 단어 뒤에 붙어 づか(즈카)가 되어서, 무슨 즈카 하는 지명이나 인명이 몇 개 있긴 하거든요. 이곳은 그냥 요코스카 시(横須賀市)입니다. 스카(須賀)는 모래사장을 뜻한다고 하네요.

 

미술관 앞에는 아이들이 만든 눈사람들이 늘어서 있습니다.